[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국내 금융권의 경쟁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자금을 공급하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공공금융, 산업 협력, ESG를 결합한 ‘복합 플랫폼’으로 빠르게 진화하는 흐름이다. 금융사가 기술과 산업을 연결하는 인프라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단순 수익 경쟁을 넘어 ‘누가 더 넓은 생태계를 구축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KB금융의 행보다. KB금융은 6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로보컵 2026’ 메인 후원에 나서며 기존 스포츠 마케팅의 틀을 깨고 AI·로봇 분야까지 지원을 확대했다. 단순 후원을 넘어 청소년과 대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까지 연계하면서, 금융이 직접 기술 인재 육성에 나선 점이 주목된다. 금융사가 산업 외곽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 미래 기술 생태계의 ‘참여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공금융 영역에서도 금융사의 위상은 달라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이 맡은 외국환평형기금 기반 해외송금 업무는 일반 외환 거래와 달리 국제 공조 자금까지 포함되는 고난도 영역이다. 자금 흐름의 정확성과 내부통제, 결제 안정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만큼 은행의 리스크 관리 역량이 국가 단위 정책 수행의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금융사가 단순 영업 조직이 아니라 정책금융의 실행 주체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데이터 기반 금융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AI 기반 소상공인 신용평가체계를 도입해 기존 부도율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성장 가능성까지 반영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금융 이력이 부족한 차주에게도 대출 기회를 확대하는 구조다. 우리금융캐피탈 역시 생성형 AI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과 상담 자동화를 추진하며 영업·리스크·IT 전 영역의 효율화를 동시에 노리고 있다. 금융 경쟁의 기준이 ‘금리’에서 ‘데이터 분석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산업과의 결합도 가속화되는 추세다. 신한은행은 SK온과 협력해 약 5억 달러 규모 글로벌 자금 조달을 지원하며 배터리 산업의 해외 확장에 금융 파트너로 참여했다. 외환 리스크 관리부터 자본시장 조달까지 금융 솔루션을 통합 제공하는 구조다. KB증권 역시 일본에서 열린 글로벌 투자 포럼에서 한국 국채시장 경쟁력을 설명하며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섰다. 금융이 산업의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이 아니라 ‘앞에서 설계를 돕는 역할’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보험업계는 ‘신뢰 경쟁’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소비자서비스헌장을 제정해 고객 보호를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명문화했고, 롯데손해보험은 GA와의 협약을 통해 모집 과정의 투명성과 내부통제를 강화했다. 삼성화재는 병원과 협력해 치료 이후 건강관리까지 이어지는 헬스케어 모델을 구축하며 보험의 개념을 사후 보장에서 사전 관리로 확장하고 있다. 단순 보장 상품 경쟁에서 벗어나 ‘생활 관리 서비스’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ESG와 보안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경쟁 요소다. NH농협캐피탈은 전사적 에너지 절감 캠페인을 통해 일상 속 ESG 실천을 조직 문화로 정착시키고 있으며, 한화손해보험은 버그바운티 프로그램을 통해 외부 화이트해커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보안 체계를 고도화했다.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 보안은 곧 고객 신뢰와 직결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투자와 자산운용 분야에서도 변화는 분명하다. 삼성자산운용의 ETF가 순자산 20조원을 돌파하며 시장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신한자산운용의 펀드는 5년 수익률 60%를 웃도는 성과를 기록하며 자금 유입을 끌어냈다. 단기 수익률 중심 투자에서 벗어나 안정성과 전략, 장기 성과를 동시에 고려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금융권 경쟁의 본질은 ‘돈’에서 ‘기술과 신뢰’로 이동하고 있다. AI를 통해 고객을 이해하고, ESG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증명하며, 글로벌 협력을 통해 산업을 확장하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금융사는 자금을 중개하는 기관이 아니라 산업과 기술, 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이라며 “AI·데이터·신뢰를 얼마나 결합하느냐가 향후 금융 판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