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을 맞아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내놓은 신년사는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한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 지정학적 리스크, 기술 패권 경쟁이 겹친 환경 속에서 재계는 AI를 더 이상 미래 담론이 아닌 당면한 생존 전략으로 규정했다. 메시지의 표현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2026년은 준비의 시간이 아니라, 전환과 실행으로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원년이라는 인식이다 .
재계에서 가장 강한 2026년 경영 메시지를 던진 총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그는 AI를 ‘거대한 파도’에 비유하며,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간다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자세를 주문했다. AI가 산업의 생산함수 자체를 바꾸는 만큼, 기존 사업의 본질을 단단히 한 뒤 그 위에 AI를 결합해야 새로운 사업자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AI를 별도의 신사업이 아닌, 모든 사업을 재정의하는 엔진으로 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AI 전환의 속도를 강조한 그룹도 적지 않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AI 기반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머지않아 완전히 다른 선상에 서게 될 것”이라며 전사적 AX(인공지능 전환) 가속화를 주문했다. 두산은 발전·건설기계·로봇을 토대로 ‘피지컬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AI를 실제 설비와 산업 현장에 연결해 경쟁 우위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AI발 산업 격변을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변곡점”으로 규정했다. 그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뛰어넘는 혁신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고 진단하며 ‘선택과 집중’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핵심 가치를 하나로 좁히고, 그 영역에서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파고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는 AI 시대의 혁신이 선택의 문제이자 집중의 싸움임을 강조한 대목이다.
제조·인프라 그룹들의 메시지도 결이 같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기술 초격차 유지를 강조하며 “기술적 우위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2026년을 ‘AI 비즈니스 임팩트’가 가시화되는 원년으로 규정하며, 실험 단계에 머물지 말고 실제 수익과 사업 성과로 연결하라고 주문했다. AI를 써봤느냐가 아니라, AI로 무엇을 벌어들이느냐가 평가 기준이 된다는 의미다.
삼성과 한화 역시 방향성은 명확하다. 이재용 회장은 별도의 신년사를 내지 않았지만, 본원적 기술 경쟁력 회복과 AI 반도체 중심의 실행 전략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AI·방산 등 핵심 사업에서 원천기술 확보 없이는 50년, 100년의 미래도 없다고 못 박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는 '마스가'로 상징되는 한미 산업 협력을 주도하며 방산·조선 분야의 국가대표 기업으로 성장했고, 산업과 사회의 필수 동력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책임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AI, 방산 등 핵심 사업 분야에서 미래를 좌우할 원천기술을 보유해야 50년, 100년 영속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다"며 "방산, 항공우주, 해양, 에너지, 소재, 금융 등 전 사업영역에서 미래 선도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26년의 경영 환경은 여전히 혹독하며, 질적 성장을 위한 턴어라운드(개선)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조직은 구성원이 스스로 과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때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차별화된 성과가 창출된다"며 "계획과 실행의 간극을 줄여 올해를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해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재계 신년사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실행력’에 있다고 본다. AI는 투자 규모보다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을 바꿀 때 성과가 난다. 이에 따라 2026년 기업들의 과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데이터 체질 개선이다. 현업 데이터의 품질과 표준 없이는 어떤 AI도 한계에 부딪힌다.
결국 2026년 재계 경영 키워드는 ‘AI 전환을 통한 실질 성과’로 요약된다. 총수들이 일제히 AI를 꺼내 든 것은, 향후 3~5년 경쟁 구도가 올해를 기점으로 갈릴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다. 남은 것은 누가 더 빠르게 실험하고, 현장에 적용해, 성과로 증명하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