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엔진’이 사라진 자리에 ‘전기모터’가 들어앉는 시대다. 가솔린을 태우며 폭발적인 굉음을 내지르던 내연기관의 시대에 이어, 고요하지만 강력한 전동화의 파도가 자동차 산업 전반을 덮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가장 큰 실존적 질문을 마주한 장르는 단연 스포츠카다. 효율성과 정숙함이 미덕인 일반 승용차와 달리, 스포츠카는 비효율적인 소음과 진동, 그리고 기계적인 직결감 자체가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과거 스포츠카의 공식은 단순했다. 더 큰 배기량, 더 높은 회전수, 더 자극적인 배기음. 그러나 배터리와 모터가 성능의 핵심이 된 지금, 스포츠카는 더 이상 ‘얼마나 빠른가’만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증명하는가’라는 질문이 앞에 놓였다. 흥미로운 점은, 전동화가 이들의 정체성을 지우기보다 오히려 각 브랜드의 철학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터스는 전기차 시대에도 창립자 콜린 채프먼의 철학을 고수한다. “단순화하고, 그리고 가볍게 하라”는 명제는 하이퍼 전기 스포츠카 에바이야(Evija)에서 극단적으로 구현됐다. 전기차가 필연적으로 무거워진다는 한계를 부정하지 않고, 탄소섬유 모노코크와 경량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무게와 정면으로 싸운다. 90kWh가 넘는 배터리를 얹고도 1.9톤에 못 미치는 공차중량을 달성한 이 차는, 출력 경쟁보다 반응성과 정밀함을 앞세운다. 로터스에게 전동화는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브랜드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증명하는 도구다.
페라리는 조금 더 긴 호흡을 택했다. 아직 순수 전기 스포츠카를 내놓지 않았지만, 하이브리드를 통해 전동화의 언어를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다. F1에서 시작된 에너지 회수 시스템과 배터리 기술은 라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로 이어지며 공도 위로 내려왔다. 페라리에게 스포츠카의 본질은 수치가 아니라 감정의 곡선이다. 전기모터는 엔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드라마를 더 극적으로 만드는 조연에 가깝다. 곧 등장할 순수 전기 모델 역시, 기술의 과시보다 페라리식 감정의 연속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람보르기니는 전동화를 ‘강화’의 도구로 해석한다. 레부엘토는 V12 엔진의 폭력적인 캐릭터를 전기모터로 더욱 즉각적으로 드러낸다. 정숙함이나 효율을 위한 하이브리드가 아니라, 가속 초반의 충격과 체감 속도를 증폭시키는 장치다. 동시에 전기 콘셉트카 란자도르를 통해 미래를 예고하며, 소프트웨어와 모터 제어로 ‘제어 가능한 광기’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람보르기니에게 전동화는 순응이 아니라, 과장의 새로운 무기다.
마세라티는 그란투리스모의 언어로 전동화를 해석한다. 빠르되 거칠지 않고, 강력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 주행 감각. 폴고레 라인업은 전기모터의 즉각적인 토크와 정숙성을 통해 여정 그 자체의 품격을 강조한다. 사운드의 상실이라는 과제 앞에서 마세라티는 내연기관을 흉내 내기보다, 전기차만이 낼 수 있는 고주파 디지털 사운드를 새로운 미학으로 만들었다.
이처럼 전동화는 스포츠카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의 시작에 가깝다. 속도는 이미 충분히 빠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반응, 감각, 그리고 철학이다. 엔진이 사라진 시대, 스포츠카는 더 이상 굉음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지키며,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