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되면서 국내 대기업 이사회 구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사외이사 인선 기준이 규제 대응 중심에서 사업 이해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이사회 성격 자체가 ‘감시 기구’에서 ‘전략 판단 기구’로 바뀌는 흐름이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28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자산 상위 30대 그룹 계열사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229개사의 사외이사 847명(2024~2026년 신규 포함) 분석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 분석 결과 재계 출신 비중은 2024년 16.4%에서 2025년 19.2%, 2026년 23.3%로 상승했다. 재계 출신 사외이사가 2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단순한 인적 구성 변화가 아니라, 이사회가 실제 경영 판단에 관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그룹별로는 인선 전략이 뚜렷하게 갈렸다. 롯데그룹은 사외이사 59명 중 47.5%가 재계 출신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고, SK그룹도 38.8%로 뒤를 이었다. 두 그룹 모두 사업 경험을 갖춘 인사를 중심으로 ‘실무형 이사회’를 강화하는 흐름이 확인된다. 반면 삼성·CJ·신세계는 관료 출신 중심 구조가 유지됐다. CJ는 75%, 신세계 65%, 삼성 55%가 관료 출신으로 집계됐다. 이중 상당수는 검찰·사법부·공정거래위원회 출신으로, 규제 대응과 정책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둔 인선으로 해석된다. 같은 사외이사 제도 안에서도 ‘사업 이해형’과 ‘규제 대응형’으로 전략이 분화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와 LG는 학계 중심 구조가 두드러졌다. 현대차는 46.2%, LG는 73.8%가 교수 등 학계 출신으로 나타났다. LG는 30대 그룹 가운데 학계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는 기술 변화 대응과 연구 기반 자문 기능을 강화하려는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학계 중심 구조는 전문성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빠른 의사결정이나 현장 경영 판단과의 간극은 과제로 지적됐다.
전문분야 구성에서도 변화 방향은 분명하다. 법률·정책 분야는 2026년 기준 28.2%로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증가세는 멈췄다. 반면 기술·세무 분야는 확대 경향이 뚜렷했다. 관련 비중은 2024년 14.8%에서 2026년 16.5%로 증가했고, 특히 세무 분야는 같은 기간 2.2%에서 6.8%로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이는 기업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규제 대응뿐 아니라 사업 구조와 재무 전략을 동시에 이해하는 실무형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회계(14.6%), 비즈니스(14.2%), 금융투자(12.8%) 분야도 안정적인 비중을 유지하며 이사회 기능 다변화를 뒷받침했다. 반면 ESG·환경 분야는 2024년 5.5%에서 2026년 3.0%로 감소했다. ESG 이슈의 중요성이 낮아졌다기보다, 기업들이 별도의 위원회나 내부 조직으로 기능을 분리하면서 사외이사 구성에서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축소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여성 사외이사 확대 흐름도 이어졌다. 2026년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122명 중 42명(25.0%)이 여성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기준으로도 여성 비중은 23.2%까지 올라섰다. 경력별로는 학계 출신이 42.1%로 가장 많았고, 재계 26.4%, 관료 16.2% 순이었다. 단순한 다양성 확대를 넘어 전문 인력 풀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이 같은 변화는 이사회가 형식적 견제 장치를 넘어 기업 전략에 직접 관여하는 의사결정 기구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주 중심 책임이 강화되는 환경에서 기업들은 규제 대응 능력뿐 아니라 사업 이해도와 재무 판단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사를 요구하고 있다. 재계 출신 확대, 기술·세무 전문가 증가, 여성 참여 확대는 공통적으로 이사회 기능이 ‘감시’에서 ‘전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