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서연옥 기자] 금융권이 ‘상품 경쟁’에서 ‘경험 경쟁’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산업 전반의 판을 바꾸고 있다. 금리와 한도 중심의 전통적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콘텐츠, 데이터, 생활 서비스까지 결합한 복합 금융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 확산과 비대면 금융 환경이 고도화되면서 고객이 체감하는 서비스 경험이 금융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마케팅 전략에서부터 뚜렷하게 감지된다. 하나금융그룹은 출범 20주년을 맞아 단편 영화 형식의 ‘하나 유니버스’를 선보이며 이른바 ‘뱅크테인먼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단순 광고를 넘어 약 9분 분량의 스토리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금융상품 설명 대신 ‘손님을 향한 진심’이라는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특징이다. 금융권이 더 이상 정보 전달형 광고에 머물지 않고 콘텐츠 산업과 결합해 고객 접점을 확장하는 흐름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제작비 증가에 따른 마케팅 효율성 논쟁도 함께 제기된다.
연금과 자산관리 시장에서는 ‘통합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는 농협은행, NH투자증권, NH아문디자산운용을 중심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은행의 수익률 경쟁력, 증권의 OCIO 운용 역량, 자산운용사의 연금 특화 상품을 결합해 그룹 차원의 통합 연금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수백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과 증권 간 주도권 경쟁 역시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포용금융 영역에서도 데이터 기반 혁신이 본격화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범위를 보증서·담보대출까지 확대하며 금융 접근성을 높였다. 신한은행은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모형(SCB)’을 도입해 매출, 상권, 업종 등 비금융 데이터를 반영한 평가 체계를 구축했다. 기존 금융이력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미래 성장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데이터 기반 평가가 확산되면서 중·저신용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면서도 “데이터 신뢰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 생활과 결합한 금융상품 경쟁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나은행의 ‘하나모임통장’은 모임 자금 관리 기능과 금리 혜택을 결합해 생활금융 영역을 강화했고, 새마을금고의 고금리 적금은 저출생 대응 정책과 금융 혜택을 접목했다. BNK부산은행은 자동차 구매와 연계한 적금 상품을 통해 소비와 금융을 연결했고, KB국민카드는 교통비 환급 이벤트로 생활비 절감 수요를 겨냥했다. 금융이 특정 목적 자금 관리에서 벗어나 일상 소비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보험업권 역시 ‘경험 중심 서비스’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주택화재보험을 선물 형태로 제공하며 보험의 활용 방식을 확장했고,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간병보험과 간병서비스를 연계해 고객 편의성을 높였다. DB손해보험은 오프라인 체험형 마케팅을 통해 펫보험 인식 개선에 나서는 등 고객 접점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보험 상품이 단순 보장 기능을 넘어 생활 서비스로 확장되는 흐름이다.
ESG와 사회공헌 역시 중요한 경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우리은행은 조손가정을 위한 맞춤형 지원 사업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고, NH농협은행은 농촌 아동 공간 조성과 외환 아카데미 운영으로 지역사회와 기업 고객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두나무는 에너지 절감 정책을 시행하며 친환경 경영을 강화하는 등 금융·플랫폼 기업 전반으로 ESG 실천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결국 금융권 변화의 핵심은 ‘고객 중심’으로 수렴된다. 상품 경쟁에서 경험 경쟁으로, 신용 중심 평가에서 데이터 기반 평가로, 금융 서비스에서 생활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금융사는 금리나 상품만으로 경쟁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콘텐츠, 데이터, ESG를 결합한 종합적인 고객 경험 설계 능력이 시장 판도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