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한창이던 지난주, LG전자는 조용히 승부수를 던졌다. 유럽 빌트인 가전 시장. 보쉬와 지멘스가 수십 년째 장악해온 그 시장이다. LG전자는 20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유로쿠치나'에 참가해 빌트인 가전 패키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오븐, 인덕션, 냉장고, 식기세척기를 하나로 묶되 주방 구조에 따라 개별 선택도 가능하게 했다. 세트로 팔되 강요하지 않는 구성이다.
유럽은 빌트인 가전의 본고장이다. 글로벌 빌트인 수요의 약 40%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 문제는 시장이 이미 성숙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쉽게 바꾸지 않고, 유통망은 기존 강자들이 틀어쥐고 있다. 여기에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이 변수로 끼어들었다. 독일·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가전을 새로 살 때 전력 효율을 예전보다 훨씬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유럽, 특히 서유럽 도심 주택은 오래되고 좁다. 파리나 밀라노의 아파트 주방에 한국식 대형 가전을 밀어 넣으면 맞지 않는다. 이를 의식한 LG전자는 제품 폭을 줄이고 가구 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튀어나오는 부분을 없애 주방 전체가 하나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플러시 핏(flush fit)' 설계다.
LG전자는 에너지 관리 기능도 손봤다. 식기세척기는 세척 중 오염 정도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물과 온도를 알아서 조절한다. 냉장고는 사용 패턴을 학습해 자주 쓰지 않는 시간대에 냉각 강도를 줄인다. 전기를 덜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쓸 때 제대로 쓰고 나머지는 아끼는 구조다.
LG전자의 이같은 전략에 대해 현지 반응은 나쁘지 않다. 유럽 가전 유통 업계의 한 바이어는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 살 때 10년치 전기요금을 머릿속으로 계산한다"며 "에너지 효율이 구매를 가르는 기준이 된 건 확실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LG 제품이 좋다는 건 알겠는데, 우리 매장에서 팔려면 애프터서비스 체계가 먼저"라는 말도 덧붙였다.
LG전자는 프리미엄 라인 'SKS(Signature Kitchen Suite)'와 이번 패키지 라인을 투 트랙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고가 시장은 SKS로, 실용적 선택을 원하는 중간 시장은 패키지로 대응하는 구조다. 여기에 고급 주택 시공사나 다세대 주택 개발업체를 직접 공략하는 B2B 확장도 검토 중이다. 건물 지을 때부터 LG 가전을 넣어버리는 방식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 가전시장은 유통 채널 손에 달려 있다"며 "제품 브랜드 인지도와 서비스망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유럽시장을 공략하는 주요한 성공 키워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