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한국 단색화의 거장 하종현이 올 9월 미국 땅을 밟는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첫 미국 회고전이다. 1970년대부터 반세기 가까이 이어온 '배압법(背押法)' 작업이 미국 주요 미술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시를 성사시킨 것은 SK그룹 계열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포도뮤지엄이다. 제주에 본거지를 둔 이 미술관은 개관 5주년(4월 24일)을 맞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과의 협력을 동시에 공개했다.
하종현(87)은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 넣는 독자적 기법으로 한국 추상미술의 독립적 언어를 개척한 작가다.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 대형 회고전(2019)을 거쳤고, 유럽 갤러리를 통해 알려졌지만 미국 주요 공공 미술관에서의 본격 조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포도뮤지엄과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다. 세부 구성은 확정 중이며, 9월 개막 예정이다. 하종현은 최근 인터뷰에서 "내 작업이 한국을 넘어 더 넓은 맥락에서 읽히길 바라왔다"고 밝혔다.
포도뮤지엄은 4월부터 3년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연례 프로그램 '우먼 앤 더 크리티컬 아이(Women & the Critical Eye)'를 후원한다. 여성 소장가·예술가·전문가들이 작품 감식과 수집, 창작을 논의하는 이 행사의 첫 회는 15일 '예술가와 모성'을 주제로 열린다.
맥스 홀라인 메트 관장은 "이번 협력으로 주요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며 "양 기관 간 교류가 새로운 예술적 접점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술계에서는 국내 사립 미술관이 메트와 중장기 후원 계약을 맺은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국내 공공 미술관이 예산 제약으로 해외 협력에 소극적인 사이, 민간 미술관이 국제 교류의 새 통로를 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미술시장 연구소 김수진 연구위원은 "포도뮤지엄처럼 재단 배경을 가진 민간관이 메트급 기관과 다년 계약을 맺는 건 자본력과 기획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라며 "K-아트의 해외 저변을 넓히는 긍정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물음도 있다. 대기업 계열 재단 후원에 기대는 구조가 미술관 독립성과 장기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포도뮤지엄은 개관 이후 '다양성과 포용성'을 주제로 한 기획 전시를 이어왔으며, 현재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전시를 운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