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서연옥 기자] 국내 대기업의 고용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그룹들의 매출과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채용 확대는 이어지지 못했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에서는 최근 1년 새 1만2375개의 일자리가 줄어든 반면 쿠팡은 사상 처음으로 고용 10만 명을 돌파하며 SK그룹을 제치고 국내 그룹 고용 순위 4위에 올랐다. 실적 증가가 곧 고용 확대를 의미하던 기존 공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2일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발표한 ‘102개 그룹 대상 2024~2025년 고용 변동 분석’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자산 5조 원 이상 102개 대기업집단의 국내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192만472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191만2302명과 비교하면 817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가율은 0.4%다.
이는 직전 조사 당시 92개 대기업집단의 고용이 3만3047명 늘며 1.8%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둔화된 수치다. 불과 1년 만에 고용 증가 규모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며 대기업의 고용 창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표면적으로는 고용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상황은 다소 다르다. 지난해 아워홈이 한화그룹 계열로 편입되면서 1만 명이 넘는 인력이 새롭게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면 전체 대기업 고용은 사실상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기업의 고용 기여도도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 지난해 말 기준 102개 그룹의 전체 임직원 수는 같은 시기 국내 고용보험 가입자 1555만5839명의 12.2% 수준에 머물렀다.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실제 일자리 상당수는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 부문이 담당하는 셈이다. 조사 대상 102개 그룹 가운데 직원 수가 증가한 곳은 47개, 감소한 곳은 44개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11개 그룹은 신규 지정되거나 변동이 없었다.
고용 증가 규모가 가장 큰 그룹은 한화다. 한화의 임직원 수는 5만7387명에서 7만1711명으로 1만4324명 늘었다. 한화 고용 증가분 상당수는 아워홈 편입 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됐다. 이같은 영향으로 한화의 그룹 고용 순위는 9위에서 7위로 상승했다. 실질적인 고용 확대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띈 곳은 쿠팡이다. 쿠팡그룹의 임직원 수는 1년 새 8250명 증가한 10만8131명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쿠팡은 SK그룹을 제치고 국내 그룹 고용 순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쿠팡의 약진은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내 플랫폼 기업이 전통 제조업 중심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고용 규모를 확보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때 제조업 대기업이 독점하던 고용 상위권에 플랫폼 기업이 본격 진입했다는 점에서 국내 산업 구조 변화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고용 10만 명 이상 그룹 가운데 직원 수가 늘어난 곳은 쿠팡이 유일했다. 삼성과 현대차, LG, SK는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물류센터 확장과 배송 네트워크 구축, 이커머스 시장 성장세가 대규모 고용 창출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소노인터내셔널, 태광, LIG, KT 등도 1000명 이상 고용을 늘리며 증가 그룹 대열에 함류했다.

반면 주요 제조업과 유통업 중심 그룹에서는 인력 감소가 두드러졌다. 고용 감소 규모가 가장 큰 곳은 LG그룹이다. LG의 직원 수는 14만9459명에서 14만4089명으로 5370명 줄었다. 주요 계열사 전반에서 인력이 감소한 영향이다. 롯데와 SK, 신세계, CJ, 현대차 등 주요 그룹에서도 수천 명 규모의 고용 감소가 이어졌다. 특히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의 고용 감소 규모는 총 1만2375명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감소 규모보다 감소 주체다. 삼성과 SK, 현대차, LG는 국내 민간 고용과 산업 성장을 상징하는 대표 기업집단이다. 이들 그룹이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인력을 줄였다는 것은 과거와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강화에 무게를 두면서 채용 전략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별 기업 기준으로는 삼성전자가 12만2748명으로 가장 많은 직원을 보유한 기업 자리를 유지했다. 삼성전자 역시 전년보다 약 660명이 줄었다. 삼성은 2017년 이후 매년 고용 규모를 늘려왔지만 지난해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내 최대 고용 그룹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적지 않다.

고용 규모 상위권에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 현대자동차, 기아, LG전자, SK하이닉스가 이름을 올렸다. 이어 이마트, LG디스플레이, SCK컴퍼니, 삼성디스플레이 등이 뒤를 이었다. 고용 창출이 가장 활발했던 기업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였다. 직원 수가 1년 만에 5517명 늘었다. 전국 물류센터 확장과 배송 인프라 투자 확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업 호황의 수혜를 입은 HD현대중공업도 4300명을 늘리며 뒤를 이었다. 반도체 업황 회복에 힘입은 SK하이닉스는 2220명 증가했다. 쿠팡 본사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역시 각각 1000명 이상 인력을 늘리며 그룹 전체 고용 확대를 이끌었다. 반면 KT는 최근 1년 새 직원 수가 2226명 감소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이어 현대자동차, LG전자, 이마트, 롯데쇼핑 순으로 감소 규모가 컸다.
그룹별 전체 고용 규모에서는 삼성이 28만3830명으로 1위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은 20만1540명으로 2위, LG그룹은 14만4089명으로 3위에 올랐다. 쿠팡은 10만8131명으로 4위, SK그룹은 10만4602명으로 5위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고용 10만 명 이상 그룹 가운데 쿠팡만 유일하게 직원 수가 늘었다는 점이다. 반면 삼성과 현대차, LG, SK는 모두 감소세를 기록했다.

기업 실적과 고용이 함께 증가하던 과거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전자 업종을 중심으로 수익성은 개선됐지만 채용 규모는 오히려 줄었다. 생산성 향상과 자동화, AI 투자 확대가 기업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증가 기업의 면면도 달라졌다. 쿠팡과 HD현대중공업, SK하이닉스 등이 인력 확대를 주도한 반면 일부 전통 제조업과 유통업은 인력 축소 흐름을 보였다.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AI 확산으로 기업의 수익 증가와 고용 확대 간 연결고리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며 “과거 제조업 성장기처럼 대기업이 대규모 채용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은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스타트업과 혁신형 중소기업, 신산업 기업들이 새로운 고용 창출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