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서연옥 기자] 홈플러스 회생 절차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기업 정상화의 핵심 조건으로 꼽히는 긴급 운영자금(DIP) 지원을 둘러싸고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 정면으로 맞서면서 회생 작업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겉으로는 2000억원 규모 운영자금 확보 문제지만 논쟁의 본질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선다. 홈플러스 경영 악화에 대한 책임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회생 과정에서 대주주와 채권자가 어느 수준까지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시각 차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인 다음 달 3일이 다가오면서 시장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운영자금 확보가 늦어질수록 협력업체와 납품업체, 임직원들의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의 출발점은 메리츠금융이 제시한 긴급 운영자금 지원안이다.
메리츠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홈플러스에 1000억원 규모 DIP 금융을 제공하기로 의결했다. 해당 자금은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한 뒤 MBK파트너스와 김병주 회장의 보증이 적법하게 확인되면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홈플러스가 필요하다고 밝힌 운영자금은 총 2000억원 규모다. 메리츠는 부족한 1000억원에 대해서는 MBK 또는 MBK가 지정하는 회사가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기에 MBK의 연대보증과 김 회장의 개인 보증 의사도 요구했다.
메리츠는 이를 대출 거부가 아닌 책임 분담 차원의 제안이라고 설명한다. 경영권을 행사해 온 최대주주가 먼저 자구 노력을 보여야 금융권 역시 추가 위험을 부담할 명분이 생긴다는 논리다. 메리츠가 강조하는 것은 '최대주주 책임 원칙'이다. 투자 성과에 따른 이익은 투자자들이 가져가고 기업 부실에 따른 부담은 채권자가 떠안는 구조는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MBK가 약 50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 가운데 하나라는 점도 거론한다. MBK가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수익을 배분해왔고 일부 펀드 역시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만큼 추가 자금 지원 여력이 부족하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반면 MBK와 홈플러스는 메리츠의 요구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홈플러스는 메리츠가 1000억원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로는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을 붙여 사실상 필요한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형식적으로는 지원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회생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가로막는 구조라는 것이다.
MBK 측은 회생절차 개시 이후 현재까지 약 22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설명한다. 주요 임원들이 개인 연대보증에 참여했고 일부는 주택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자금 확보에 나섰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재무 부담을 떠안은 상황에서 추가로 1000억원을 직접 조달하라는 요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MBK 측 주장이다. 또한 메리츠가 제안한 후순위 담보권 설정 역시 기존 채권단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실질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양측의 시각 차이는 홈플러스의 미래 가치에 대한 판단에서도 드러난다. 홈플러스는 운영자금만 확보되면 영업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상품 공급이 재개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매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근거로 제시한다. 자금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일 뿐 사업 경쟁력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MBK 역시 청산보다 회생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홈플러스가 무너질 경우 협력업체와 납품업체, 임직원, 지역 상권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메리츠는 기업 정상화 가능성을 인정하더라도 최대주주의 선제적인 책임 이행이 우선이라고 본다. 경영권을 행사해 온 주체가 먼저 손실을 부담하고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자구안을 내놓아야 채권단 역시 추가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시장의 관심은 1000억원이냐 2000억원이냐에 있지 않다. 누가 회생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에 더 집중돼 있다. 메리츠는 최대주주가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MBK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손실을 감수한 만큼 채권단도 정상화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 같은 시각차는 최근 구조조정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논쟁과 맞닿아 있다.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보유한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투자자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채권자는 어느 수준까지 위험을 분담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홈플러스는 제조기업과 달리 전국 점포망과 대규모 고용을 보유한 유통기업이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회생이 무산될 경우 협력업체 자금난과 고용 불안, 지역 상권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채권자와 주주의 분쟁으로 보지 않는다. 사모펀드가 소유한 대형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주주와 채권자가 어떤 방식으로 손실을 나누고 회생 비용을 분담할 것인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이번 갈등은 홈플러스 한 기업의 유동성 문제를 넘어 국내 구조조정 시장의 책임 원칙을 시험하는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주주의 책임과 채권자의 역할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느냐에 따라 홈플러스의 운명뿐 아니라 향후 유사한 기업 회생 사례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홈플러스의 회생 시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양측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협력업체와 임직원,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현실적인 타협안을 마련한다면 홈플러스는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