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서연옥 기자] 대형 건설사 사외이사 명단이 달라지고 있다. 회계사와 법조인, 전직 관료 중심이던 이사회에 AI와 에너지, ESG 전문가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건설업의 경쟁 축이 시공 능력에서 기술 혁신과 안전, 탄소중립으로 이동하면서 이사회 역시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조직으로 변모하는 모습이다.
스마트 건설 기술 확산과 중대재해 예방, ESG 경영 강화, 친환경 에너지 사업 확대가 건설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문성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경영 경험과 네트워크가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미래 산업을 이해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건설은 AI, GS건설은 ESG…사외이사에 담긴 생존 전략=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분석한 결과 현대건설은 건설업계 변화의 방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사외이사진에는 AI와 에너지, 글로벌 디지털 산업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조혜경 한성대 AI응용학과 교수는 국내 로봇산업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고 현재 삼성전자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건설 현장의 자동화와 스마트 건설 기술 확산 흐름과 맞닿아 있는 인물이다.
올해 새롭게 합류한 장화진 코히어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구글 클라우드 코리아 대표를 지낸 글로벌 IT 전문가다. 생성형 AI와 데이터 기반 경영 경험을 갖춘 만큼 디지털 전환 전략에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정은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분야 전문가다. 친환경 에너지와 미래 인프라 사업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인선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정문기 전 포스코 이사회 의장이 경영과 회계 분야 경험을 더하며 균형을 맞추고 있다. 현대건설의 사외이사 구성은 회사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건설 현장의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 에너지 사업 확대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이사회 안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GS건설은 ESG와 윤리경영,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현숙 사외이사는 기업은행과 IBK캐피탈에서 주요 보직을 맡은 금융 전문가로 투자와 자금 운영 분야 경험이 풍부하다. 황철규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는 ESG위원장을 맡아 준법경영 체계를 점검하고 있으며 손병석 전 국토교통부 차관은 교통·인프라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 전략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합류한 이호영 연세대 교수는 회계와 윤리경영 분야 전문가다. ESG와 기업윤리 연구를 바탕으로 내부통제와 투명경영 체계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건설업계가 안전과 품질, 책임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마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GS건설의 이사회 구성은 의미가 적지 않다. 금융과 법률, ESG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한 것은 지속가능경영과 신뢰 회복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대우건설은 법률과 세무, 회계 분야 전문가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김재웅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세무와 감사 분야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김재중 고문은 공정거래와 소비자 정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인석 변호사와 이영희 변호사는 각각 법원과 검찰 출신으로 준법경영과 법률 리스크 관리에 강점을 갖고 있다. 안성희 가톨릭대 교수는 회계 전문가로 감사위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해외 플랜트 사업과 도시정비사업 확대에 따른 각종 규제와 법률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전략이 반영된 인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DL이앤씨는 학계 전문가 중심의 이사회가 돋보인다. 남궁주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률 분야를 담당하고 있으며 인소영 카이스트 교수는 건설환경공학 전문가로 ESG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 첨단융합학부 이찬 교수는 조직관리와 인재개발 분야 전문가로 인사위원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조홍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이 재무와 감사 분야 경험을 더하고 있다. 법률과 환경공학, 인재개발 전문가를 전면에 배치한 것은 기술 혁신과 ESG, 조직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롯데건설은 준법경영과 내부통제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사회 구성이 특징이다. 조성래 사외이사는 BNK부산은행 상임감사위원 출신으로 감사와 리스크 관리 분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정탁교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와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각 기업법과 노동법 분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올해 새롭게 합류한 박 교수는 중대재해와 노동 규제, ESG 이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사내이사인 조도휘 전략기획부문장은 사업 전략과 내부통제 체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공격적 사업 확장보다 안정적 성장과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둔 롯데건설의 경영 기조가 이사회 구성에도 반영됐다는 평가다.
금호건설과 IPARK현대산업개발 역시 전문성 다변화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금호건설은 금융과 국제거래법, 글로벌 건축 분야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해 사업 안정성과 투자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IPARK현대산업개발은 공정거래위원장 출신 김동수 전 위원장과 법조계 출신 김진오 변호사, 마케팅 전문가 최진희 고려대 교수를 중심으로 이사회를 꾸렸다. 규제 대응 능력과 소비자 관점의 경영 전략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 40대 전문가 늘고 박사 출신 포진…건설사 이사회 세대교체=이번 조사 대상 건설사들의 사외이사 구성을 분석해 보면 건설업계 이사회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대건설과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금호건설, IPARK현대산업개발의 사외이사 27명 가운데 여성은 7명으로 약 26%를 차지했다. 교수와 연구기관 출신은 9명, 법조계 출신은 8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대는 40대 초반부터 70대 초반까지 폭넓게 분포했지만 50~60대가 중심축을 형성했다. 과거 60대 이상 중심이던 건설업계 이사회에도 40대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학력 수준도 눈길을 끈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국내 주요 대학 출신은 물론 스탠퍼드대, 조지아공대, 오하이오주립대, 위스콘신대, 펜실베이니아대, 카네기멜런대 등 해외 명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그러나 더 주목할 부분은 학력 자체보다 전문성의 방향 변화다. 과거에는 회계와 법률, 행정 경험이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AI와 에너지, ESG, 조직관리, 소비자 분석 등 미래 사업과 직결된 분야의 전문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기업별 사외이사 구성에서도 전략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대건설은 AI와 에너지, GS건설은 ESG와 윤리경영, 대우건설은 법률·회계 중심의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 DL이앤씨는 기술 혁신과 인재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롯데건설은 준법경영과 내부통제 체계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호건설과 IPARK현대산업개발은 금융·법률·소비자 관점의 전문성을 통해 사업 안정성과 규제 대응 역량을 높이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사외이사의 역할이 과거와 비교해 크게 확대됐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경영진을 감시하는 기능을 넘어 신사업 검토와 투자 판단, ESG 전략 수립, 안전경영 체계 구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AI와 친환경 에너지, 안전, 글로벌 사업 확대가 주요 경영 과제로 떠오르면서 관련 분야 전문성을 갖춘 인재 확보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건설사들이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기업이 직면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문성"이라며 "이사회가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핵심 기구로 변화하면서 구성 역시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