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국내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이 수도권에서 일부 지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과 충청권을 대상으로 신규 투자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산업계와 지역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10일 정치권과 정부,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존 수도권 생산거점을 유지하면서 일부 생산시설과 첨단 패키징 역량을 지방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공식 발표나 투자 결정이 이뤄진 단계는 아니지만 비수도권 투자 확대를 강조하는 정부 정책과 맞물리며 관련 논의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지역 투자 차원을 넘어 AI 반도체 경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가속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패키징 기술이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으로 떠올랐다. 미세공정 경쟁만으로는 성능 향상에 한계가 생기면서 여러 개의 칩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이 새로운 승부처가 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지역은 호남권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광주에 첨단 패키징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만약 투자가 현실화된다면 1991년 충남 온양캠퍼스 구축 이후 국내 패키징 생산거점을 추가하는 의미 있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온양과 천안을 중심으로 후공정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AI 반도체 수요 증가와 패키징 중요성 확대를 감안하면 생산능력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많다. 업계에서는 패키징이 더 이상 단순 후공정이 아니라 AI 시대 핵심 제조기술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방 투자 확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이미 충북 청주에 약 19조원을 투입하는 첨단 패키징 팹 P&T7 건설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충청권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일부 후공정 기능을 호남권으로 넓히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남이 후보지로 주목받는 배경에는 인프라 경쟁력이 있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생산시설이 집중되면서 전력과 용수 확보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다. 반면 호남은 태양광과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반이 풍부하고 산업용수 확보 여력도 상대적으로 넉넉한 편이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AI 데이터센터와 미래 모빌리티 산업과 연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지역경제 측면에서 기대 효과도 적지 않다.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이뤄질 경우 협력업체 유치와 고용 창출, 연구개발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기반을 지역으로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도 높다.
반면 현실적인 과제도 존재한다. 반도체 산업은 설계와 생산, 소재·부품·장비, 패키징 기업이 긴밀하게 연결된 집적 산업이다. 생산거점이 지나치게 분산되면 물류비와 운영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최첨단 전공정은 전문 인력과 협력업체가 밀집한 수도권 생태계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전공정 이전보다는 패키징과 테스트, 연구개발 시설 중심의 단계적 확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도권 클러스터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지방에 새로운 성장 거점을 더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재계는 이달 말 예정된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간 회동에서 관련 논의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낼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 투자 계획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만약 이번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공장 신설을 넘어 국내 반도체 산업의 공간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수도권 단일 축에 의존해온 산업 생태계가 다핵 거점 체제로 확장될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