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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앤 데이터] 대기업 CEO 공식 바뀌었다…‘영업통’ 밀리고 내부·기술형 부상

리더스인덱스, 상장 500대 기업 370개사 510명 비교 분석
평균 연령 다시 60세…불확실성 시대에 ‘경험 경영’ 회귀
내부 승진 84.5%로 최고치…기획·R&D·생산 전문가 약진
여성 CEO 늘었지만 여전히 2%대…학맥 구조 변화는 제한적

[서울타임즈뉴스 = 허성미 기자]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인사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한동안 외형 성장과 실적 개선을 이끌 수 있는 영업·재무형 CEO가 주목받았다면 최근에는 조직 내부를 오래 경험한 ‘내부 승진형’과 연구개발(R&D)·생산 현장을 이해하는 ‘기술형 CEO’가 경영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 구조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경기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기업들이 화려한 외부 영입보다 조직 이해도와 실행력을 갖춘 인물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19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올해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370개사의 대표이사 510명을 최근 3년간 비교 분석한 결과, 대기업 CEO 인사는 ‘내부화’와 ‘기술 중심’, 그리고 ‘경험 중시’라는 세 가지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CEO 수는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다. 2023년 545명이던 500대 기업 CEO는 2024년 534명, 2025년 517명, 올해 510명으로 줄었다. 3년 사이 35명, 6.4% 감소한 규모다. 공동대표 체제를 정리하고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 구조가 보다 단순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령 구조도 다시 높아졌다. 올해 대기업 CEO 평균 연령은 60.0세를 기록했다. 2023년 59.1세에서 지난해 59.8세로 상승한 데 이어 다시 60세 선에 올라섰다. 한때 50대 후반 중심으로 젊어지는 흐름이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위기 대응 경험과 조직 장악력을 갖춘 경영진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올해 신규 선임 CEO 가운데 60대 후반 베테랑이 적지 않았다. 도세호(68) 삼립 각자대표이사 사장과 유영환(67) 효성티앤씨 무역부문 대표이사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두 인물 모두 그룹 내에서 장기간 경험을 쌓아온 내부 출신으로, 단기 성과보다 사업 이해도와 조직 안정성을 중시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변화는 내부 승진 비중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올해 내부 출신 CEO는 431명으로 전체의 84.5%를 차지했다. 2023년 80.0%였던 비중이 해마다 상승하며 최근 4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새로 부임한 CEO 58명 가운데 47명이 내부 승진형이었다는 점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재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인사 트렌드로 보지 않는다. AI와 반도체, 배터리, 첨단소재 등 산업 경쟁이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사업 구조와 조직 문화를 깊이 이해한 인물이 전략 실행과 위기 대응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는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이는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외부 명성보다 내부 검증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직무별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과거 CEO의 대표 경로로 꼽히던 영업·마케팅과 재무 출신은 줄어든 반면 기획·전략과 기술형 경영자는 존재감을 키웠다. 기획·전략 출신 CEO는 올해 217명으로 전체의 42.6%를 차지했다. 2023년 194명(35.6%)보다 23명 늘어난 수치다. 단순한 증가를 넘어 사실상 대기업 CEO의 핵심 경력 코스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형 CEO 확대 역시 눈에 띈다. R&D 출신은 올해 35명(6.9%)으로 3년 전 32명보다 늘었다. 생산·제조 출신도 같은 기간 27명(5.0%)에서 29명(5.7%)으로 증가했다. 절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감소 흐름이 우세한 다른 직무군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현장형 리더 사례도 적지 않다. 현대자동차 최영일 국내생산담당 대표이사 부사장은 차량 개발과 생산 현장을 두루 경험한 생산기술 전문가로 꼽힌다. 자동화 설비 기업 SFA의 김상경 대표이사 전무 역시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술통이다. 반면 영업·마케팅 출신 CEO는 감소폭이 컸다. 2023년 56명(10.3%)에서 올해 42명(8.2%)으로 줄었다. 재무 출신 역시 같은 기간 106명(19.4%)에서 96명(18.8%)으로 감소했다.

 

주요 기업 인사에서도 이런 흐름은 확인된다. LG전자는 조주완 사장 후임으로 30년 넘게 가전사업을 맡아온 류재철 사장을 선택했다. LG화학은 영업 전문가 신학철 부회장 후임으로 첨단소재 분야 경험이 풍부한 김동춘 사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대제철 역시 현대차 CFO 출신 서강현 사장 후임으로 생산·기술 전문가인 이보룡 사장을 선임했다.

 

하지만 여성 CEO 확대 속도는 여전히 더딘 편이다. 여성 CEO는 올해 14명으로 3년간 12명 수준에 머물던 흐름에서 소폭 증가했지만 전체 비중은 여전히 2%대에 머문다. OCI홀딩스 이수미 대표는 30여 년간 재무와 기획 업무를 맡아온 정통 내부 승진형 여성 CEO다. 이노션은 창사 이후 첫 여성 CEO인 김정아 대표를 선임했고, LG생활건강도 여성 대표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만 최고경영층의 성별 다양성은 아직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학맥 구조는 큰 틀에서 유지됐다. CEO 출신 대학은 학부 기준으로 이른바 ‘SKY’ 비중이 40%를 넘으며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다만 내부 구도에는 변화가 있었다. 서울대 출신 CEO는 2023년 107명(19.6%)에서 올해 91명(17.8%)으로 줄었다. 연세대는 70명(12.8%)에서 67명(13.1%)으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고려대는 56명(10.3%)에서 60명(11.8%)으로 증가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CEO 지형 변화를 한국 기업 경영 방식 변화의 단면으로 해석했다. 성장 속도와 외형 확대가 우선이던 시기를 지나 기술 경쟁력과 조직 안정성이 핵심 가치로 떠오르면서 경영자 선택 기준 역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내놓은 답은 화려한 외부 스타보다 조직을 알고 현장을 이해하는 내부형·기술형 리더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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