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총파업을 불과 며칠 앞둔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사장단 사과와 정부 중재에도 접점을 찾지 못하자 이번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전면에 나섰다. 해외 출장 일정을 조정해 급히 귀국한 이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국민과 고객, 임직원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 메시지를 내놨다. 삼성전자 사측 역시 노조가 요구해온 대표교섭위원 교체를 받아들이면서 멈춰 있던 협상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16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하며 준비한 입장문을 직접 읽었다. 그는 “회사 내부 문제로 불안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전 세계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항상 삼성을 응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채찍질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발언 도중에는 세 차례 허리를 숙이며 사과의 뜻을 거듭 밝혔다.
노조와 임직원을 향해서는 내부 결속과 대화를 강조했다. 이 회장은 “노동조합 여러분, 삼성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한 몸 한 가족”이라며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매서운 비바람은 제가 맞고 다 제 탓으로 돌리겠다”며 “삼성인이라는 자부심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당부했다.
이 회장이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2020년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 문제와 관련한 사과 이후 6년 만이다. 2022년 회장 취임 이후 노사 문제를 놓고 직접 입장을 밝힌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에서는 총수까지 직접 나섰다는 점 자체를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만큼 이번 총파업 위기를 단순한 노사 충돌이 아니라 회사 신뢰와 경쟁력 문제로 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도 협상 재개를 위한 변화를 택했다. 삼성전자 측은 기존 대표교섭위원이던 김형로 DS부문 부사장을 대신해 여명구 DS부문 피플팀장 부사장을 새 교섭 대표로 선임했다. 노조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을 회사가 받아들인 셈이다. 노사는 오는 18일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후조정을 다시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협상은 사실상 총파업 전 마지막 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앞서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중노위 사후조정은 결국 결렬됐지만 이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 양측을 잇달아 만나면서 다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이번 조정에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도 직접 참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핵심 쟁점을 둘러싼 입장 차는 여전히 크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초과이익성과금(OPI) 상한 폐지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측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매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성과급을 고정 비율로 묶을 경우 미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내부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과 TV·가전·스마트폰 등을 맡는 DX부문 사이에서도 미묘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 일부 DX부문 직원들 사이에서는 노조가 반도체 성과급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실제 사내 게시판과 메신저에서는 파업 참여 여부를 둘러싼 신경전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회사 역시 비상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DS부문은 최근 부서장들에게 쟁의행위 참여 여부는 직원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며 갈등과 압박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달라는 공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삼성전자는 지금 AI 메모리 경쟁과 반도체 업황 회복이라는 중요한 갈림길 위에 서 있다. 노사 갈등이 길어질수록 시장과 고객사의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이번 중노위 조정 결과가 향후 노사 관계뿐 아니라 반도체 사업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