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국내 게임업계의 올해 1분기 실적 시즌은 예년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게임사들의 성적표는 대형 신작 흥행 여부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출시 첫날 앱마켓 순위와 매출 지표가 회사 분위기와 주가를 좌우했고 시장 역시 신작 성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올해는 흐름이 달라졌다. 새 게임 한 편의 흥행보다 오래 살아남은 IP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하느냐가 실적을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용자를 오래 붙잡아두고 반복 소비 구조를 만드는 기업들이 확실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1분기 주요 게임사들의 실적을 관통한 키워드는 뚜렷했다. ‘장기 흥행 IP’, ‘글로벌 확장’, 그리고 ‘플랫폼화’다. 단순히 게임 한 편을 성공시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IP를 수년 동안 운영하며 콘텐츠와 이벤트, 커뮤니티를 결합해 장기 체류 구조를 만드는 방향으로 산업 구조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눈에 띈 곳은 넥슨이었다. 넥슨 일본법인은 올해 1분기 매출 1조4201억원, 영업이익 5426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중심에는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와 ‘아크 레이더스’가 있었다. 특히 해외 성장세가 가팔랐다. 북미·유럽 매출은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고 전체 해외 매출 증가율은 59%에 달했다.
업계가 주목한 건 ‘메이플스토리’의 생명력이었다. 서비스 20년을 바라보는 게임이지만 여전히 신규 이용자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메이플 키우기’와 ‘메이플스토리 월드’는 북미·유럽과 동남아 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글로벌 메이플스토리 역시 서구권 이용자 증가 흐름이 이어졌다. 한때 국내 온라인게임 대표작으로 불렸던 IP가 이제는 글로벌 장기 흥행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넥슨 일본법인 이정헌 대표는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와 아크 레이더스의 글로벌 흥행으로 1분기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며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와 탄탄한 신작 라인업을 통해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한편, CMB 2026에서 제시한 혁신 이니셔티브를 통해 수익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크래프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크래프톤은 올해 1분기 매출 1조3714억원, 영업이익 5616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중심에는 여전히 ‘PUBG’가 있었다. 단일 IP 관련 매출만 1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단순 흥행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용자 제작 콘텐츠(UGC), 브랜드 협업 콘텐츠, e스포츠 리그 운영 등이 반복 소비 구조를 강화하면서 PUBG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처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시장 성장세는 눈에 띄었다. BGMI 이용자 확대와 e스포츠 흥행이 맞물리며 인도가 단순 다운로드 시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수익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PUBG가 게임을 넘어 장기 소비형 콘텐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엔씨도 반등 흐름에 올라탔다. 엔씨는 올해 1분기 매출 5574억원, 영업이익 1133억원을 기록했다. ‘아이온2’와 ‘리니지 클래식’ 흥행이 실적 개선을 이끌었고 PC게임 매출은 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외 매출 비중 역시 42%까지 높아졌다. 과거 국내 MMORPG 중심 기업 이미지가 강했던 엔씨 역시 북미·유럽과 남미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컴투스 역시 장수 IP의 힘을 다시 보여줬다. 컴투스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447억원, 영업이익 5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06.9% 증가했다. 출시 12주년을 맞은 ‘서머너즈 워’는 여전히 글로벌 핵심 매출원 역할을 했고 KBO·MLB 기반 야구 게임 시리즈도 시즌 개막 효과와 맞물리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게임업계에서는 “오래된 게임이 오히려 가장 안정적인 현금 창출원이 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넷마블도 해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넷마블은 올해 1분기 매출 6517억원, 영업이익 531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매출 비중은 79%에 달했다. 북미 비중이 41%로 가장 높았고 유럽과 동남아 매출도 꾸준히 성장했다. ‘스톤에이지 키우기’와 ‘일곱 개의 대죄: Origin’ 등 신작 효과가 일부 반영되며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갔다.
펄어비스는 신작 ‘붉은사막’ 흥행 효과를 톡톡히 봤다. 펄어비스는 올해 1분기 매출 3285억원, 영업이익 2121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매출 비중은 94%에 달했고 북미·유럽 비중만 80%를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국내 게임사 가운데 글로벌 콘솔 시장 확대 효과를 가장 강하게 보여준 사례 중 하나라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신작 공백이 길어진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올해 1분기 매출 829억원, 영업손실 255억원을 기록했다. 기존 게임 매출 감소 흐름 속에 신작 성과까지 더해지지 않으면서 적자를 이어갔다. 웹젠 역시 매출 393억원, 영업이익 53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감소했다. 다만 웹젠은 MMORPG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수집형 RPG와 서브컬처 장르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 구조 변화도 빨라지고 있다. 위메이드는 블록체인과 라이선스 사업을 기반으로 3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고 NHN은 게임보다 결제·클라우드·AI 인프라 사업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NHN은 올해 1분기 매출 6714억원, 영업이익 263억원을 기록했다. 게임보다 결제와 클라우드 부문 성장세가 더 두드러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NHN 정우진 대표는 "선제적 인프라 투자 비용이 일부 반영되며 1분기 전사 수익성에 일시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대규모 GPU 사업 수주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올해 기술 사업에서 의미 있는 실적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게임업계는 올해 1분기 실적을 두고 “게임사의 생존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예전처럼 신작 한 편 흥행 여부에 회사 분위기가 흔들리는 시대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은 IP를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반복 소비 구조로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출시 첫 달 매출 규모가 가장 중요했다면 지금은 이용자를 얼마나 오래 게임 안에 머물게 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됐다”며 “국내 게임사들이 단순 게임 제작사를 넘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