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임즈뉴스 = 최남주 기자] 대기업 오너 일가의 혼맥 양상이 2000년을 기점으로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정·관계와 혼맥을 맺어 기업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재계 내부 또는 일반인과 혼인을 선택하는 경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정략결혼’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의 선택과 가치관을 우선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공시대상기업집단 81곳의 총수 일가 중 혼맥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380명을 조사한 결과, 정·관계 혼맥 비중은 오너 2세에서 24.1%였지만, 3세는 14.1%, 4~5세는 6.9%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재계와의 혼맥 비율은 오너 2세 34.5%에서 3세 47.9%, 4~5세 46.5%로 증가했다. 재벌가가 아닌 일반인과의 결혼 비중도 오너 4~5세에서 37.2%로 확대됐다.
2000년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흐름은 동일하다. 2000년 이전 정·관계 혼맥 비중은 24.2%였지만, 2000년 이후에는 7.4%로 3분의 2 이상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재계 집안 간 혼맥은 39.2%에서 48.0%로 늘었고, 일반인과의 혼인은 24.6%에서 31.4%로 증가했다.
이같은 변화는 정치권과의 혼맥이 더 이상 기업에 실익을 주지 못한다는 환경 변화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CEO스코어 관계자는 “과거에는 정·관계와 사돈을 맺는 것이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됐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감시 강화나 규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정·관계 혼맥이 중심이었던 대표적인 사례는 오너 2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과, LS그룹 구자열 이사회 의장은 대통령 경호실 차장의 딸과 결혼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관장과 혼인했다가 지난해 최종 이혼 판결을 받았다.
반면 최근 세대로 올수록 결혼 방식은 훨씬 다양해졌다. CJ그룹 4세 이선호 경영리더는 아나운서 출신 이다희 씨와, 현대자동차그룹 4세 선아영 씨는 배우 길용우 씨의 아들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자녀 정준 씨는 세계적인 프로골퍼 리디아 고와 가정을 꾸렸다. 또 장녀 정유미 씨의 경우는 일반인과 결혼했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일반 직장인 등 결혼 상대가 더 다양해진 것이다.
재계간 혼맥 연결도를 보면 LS그룹이 가장 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LS는 현대자동차, OCI, BGF, 삼표, 사조, 동국제강 등 7개 그룹과 혼맥으로 연결됐다. 이어 LG와 GS가 각각 4개 그룹과 혼맥을 형성했다. LG는 DL, 삼성, GS, 두산과 혼맥을 맺고 있고, GS 역시 LG, 삼표, 중앙, 태광 등과 혼인 관계로 얽혀 있다.















